안락을 바라는 인간들에게 니체는 이런 말을 했음.
"안락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목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종말이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을 조소해야 할 것, 경멸해야 할 것으로 만드는 것이며, 인간은 그것에 의해서 자신의 몰락을 바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들었음. 그래서 니체가 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한번 같이 나눠 볼까 합니다.
니체는 인생의 본질을 자신을 강하고 위대한 존재로 고양시키고 싶어 하는 힘에 의지해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니체는 현대인들은 안락한 생존과 쾌락에만 연연해야 하기 때문에 병약한 인간이 되어버렸다고 말합니다.
(1) 니체가 말하는 삶을 버겁게 느끼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
"인간이 무엇인가 위대한 것을 성취하면서 자신이 고양되었다고 느끼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과 싸우면서 자신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안일함과 향락을 추구하려는 자기의 성향과 투쟁하면서 자신에 대해서 승리를 거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자기를 극복하려고 하는 인간은 이 세상에서 부딪히는 모든 곤란을 오히려 그것과의 대결을 통해서 자신을 고양시킬 수 있는 기회로 여기면서 환영합니다. 힘의 의지가 쇠약해지고 지쳐서 병들어 있을 때만 사람들은 편안함과 만족을 찾게 되고 자신과 투쟁하지 않으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택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현실에서 여러 공경을 겪게 될 때 그들에게는 이 세계가 자신의 안락함을 방해하는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사는 것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의지와 생명력이 약해진 것은 아닌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니체는 말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히말라야 같은 산을 오르는 사람에게 우리는 왜 산에 올라가느냐고 묻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한 유명한 답은 산이 그곳에 있으니까 올라갈 뿐이다 는 것이죠.
니체라면 어떻게 대답을 했을까요?
자신의 힘을 느끼고 싶어서 험난하고 높은 산을 겁내지 않고 올라가는 자신의 강한 힘을 느끼고 싶어서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험준하고 높은 산을 아무런 불평 없이 올라가 정상에 설 때 우리는 자신에 대해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뿌듯함은 정상에 올라갔을 때 가장 크겠지만 올라가는 과정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경사면에 올라갈 때 우리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욕망을 극복하면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주인임을 느낌과 동시에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2) 니체가 말한 말세인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을 쏟아내고 아주 작고 불편한 자극에도 호들갑을 뜹니다.
이렇게 자극에 민감하면서 안락만을 탐하는 인간을 두고 니체는 말세인이라고 부릅니다.
니체는 말세인을 모든 것을 작게 만드는 벼룩 같은 인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니체는 말세인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 돼지는 이제 작아졌다. 그리고 그 위에 모든 것을 작게 만든 마지막 인간이 뛰며 돌아다닌다. 노동은 하나의 즐거움이기 때문에 인간은 여전히 일한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 즐거움이 너무나 고통스러운 곳이 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이제 인간은 가난하게 되지도 않고 풍요롭게 되지도 않는다. 어느 쪽이든 너무나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누가 지금도 여전히 지배하기를 원하겠는가? 누가 복종하겠는가? 양쪽 모두 너무나 많은 힘을 소모했다. 목자는 없고 군중만 있구나 모든 사람은 동일한 것을 원한다. 모든 사람은 동일하다. 다르게 느끼는 사람은 자발적으로 정신병원으로 간다."
(3) 현대인의 꿈에 대한 니체의 이야기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정된 직장을 다니고 배우자와 자식들과 함께 안락한 가정을 이루어서 편안하게 살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은 노동도 너무 힘들지 않게 적당히 하고 명령하고 복종하는 것도 부담스러우니 모든 사람이 함께 지배한다고 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민주주의를 선호합니다.
사람들은 무엇인가 위대한 것을 성취하고 싶다는 야망도 패기도 책임의식도 없이 적당히 자신의 안락을 추구할 뿐입니다.
니체는 이러한 인간을 인간의 타락이 갈 때까지 가서 소시민적인 안락만을 탐하는 단계에 이른 말세인, 최후의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4) 말세인 vs 초인
니체가 위대한 인간을 말할 때 니체는 그 내적인 힘은 허약하면서 사람들에게 위대한 존재로 인정받는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위대한 인간은 전혀 유명하지 않더라도 내적으론 강하면서도 기품이 있는 생명력에 충만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혹시 여러분은 주위에서 깊음이 느껴지는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아 저 사람은 곡이 한 인간이야 라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 있었나요.
그런 사람은 피곤하다고 아무 데서나 들어 눕는 인간이 아니라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꼿꼿한 자세를 잃지 않는 사람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의연하고 당당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강한 긍지를 갖기에 외부의 상황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항상 그 상황의 주인으로 존재하면서 상황을 압도하는 자신의 힘을 느낍니다.
이렇게 기쁨이 있고 고귀한 인간에게는 세계가 어떻게 보일까요?
쇼펜하우어가 말한 것처럼 어둡고 우울하게 나타날까요?
(5) 세계를 아름답게 보는 사람
니체는 이러한 인간에게는 단연코 세계가 아름답게 보인다라고 말하면서 아름다움이란 우리 인간이 자신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나눠주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름다움과 풍요로움을 느끼는 사람은 이웃 세계도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으로 경험합니다.
이런 사람은 직업적인 예술가는 아니더라도 이미 예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니체는 훌륭한 예술가들이 창조한 예술도 사실은 이러한 힘의 충만함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행복을 고난과 고통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고난이 일어나지 않고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세상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고난을 겪을 수밖에 없으며 이와 함께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고통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야스퍼스와 같은 철학자는 인간이 어떻게 해서든 벗어날 수 없는 한계 상황 중에 하나가 고난과 고통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의미에서 행복한 인간은 고난과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 않고 그것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인 평정과 충일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행복의 반대는 피해나 고통이 아니라 내적으로 빈곤해지고 생명력이 쇠퇴한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우울증과 염세주의입니다. 이러한 우울증과 염세주의의 상태는 고통과 고난은 물론이고 매사를 부정적으로 보면서 어두운 감정을 느끼는 허약한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6) 결론
우리는 종종 사는 것이 힘들다는 생각을 합니다.
니체는 우리가 이런 생각에 빠지는 것은 우리가 처한 상황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허약한 인간이 되었기 때문인지는 아닌지 돌이켜 볼 것을 요구합니다.
이와 함께 니체는 우리가 자신을 강한 인간으로 자신을 단련할 것을 요구합니다.
초인이 되시겠습니까? 말세인이 되시겠습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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