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러셀의 어린시절과 가정 환경
버트런드 러셀은 1872년 5월 18일 영국 웨일즈에서 출생.
버트런드 러셀의 할아버지는 영국 수상을 두 번이나 지낸 존 러셀 경이었을 정도로 러셀 가문은 영국의 명문가였음.
버트런드 러셀은 3남매 중 막내였는데 두 살 때 어머니와 누나가 사망, 4살 때 아버지마저 사망.
그리고 8살에는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남.
그래서 사실상 러셀이 기억하는 유년기의 가족은 할머니와 형이 전부였다고 함.
2. 진저한 사랑꾼, 러셀
러셀의 할머니는 보수적인 청교도였지만 한편으로는 러셀에게 군중을 따라 악을 행하지 말라 라는 성경 구절을 들려주던 열려 있는 신세대 할머니였음.
러셀은 학교에 가는 대신 가정 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는데 친구가 없었기에 고독한 유년기를 보냄.
훗날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혼자 정원에서 고독과 싸우는 시간으로 뽑음.
고독은 사랑에 대한 갈망으로 갈망은 욕망으로 바뀌어 14살에는 하녀를 유혹함.
또한, 99년의 일생 동안 네 번을 결혼했으며 다수의 여성과 사랑을 나눈 사랑꾼.
자서전에서 러셀이 밝힌 세 가지 열정.
첫째는 사랑에 대한 갈망
둘째는 지식에 대한 탐구
셋째는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입니다.
"우리의 의식이 끝자락을 넘어 자비찬 죽음의 심연에 다다를 때 사랑은 우리를 시면에서 구출해 주며 누군가와 사랑으로 결합될 때 성자들이 상상해온 천국의 축소판을 볼 수 있었다."(버트런드 러셀)
평생 사랑을 갈망했던 아니 사랑에 솔직했던 러셀 그에게는 또 하나의 열정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러셀이 11살이 되던 해 형이었던 프랭크 러셀이 권 낸 책, '유클리드 기하학 원론'
많은 과학자들의 유년기를 지배했던 유클리드 원론은 러셀의 삶을 바꾸어 놓음.
유클리드 원론의 위대함은 단 10개의 공리만 가지고 기하학을 평정했다는 점인데 수학에 푹 빠져버린 러셀은 언젠가 자신만의 공리 체계를 세울 거라는 꿈을 꿈.
3. 천재를 만난 천재, 러셀
1890년 19살의 러셀은 영국 최고의 명문 캠브리지 트리니티 대학에 장학생으로 입학.
그를 심사했던 교수는 미래의 동업자이자 위대한 수학자 화이트 헤드!
이후 러셀은 천재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영국의 계관 시인 엘리엇 등 수많은 지성들과 교류하며 다양한 학문을 접하게 됨.
하지만 이 중 러셀이 가장 관심 있던 분야는 역시나 수학이었으면 20대 초반에는 집합론에서 유명한 러셀의 패러독스 수학의 원리가 발표되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왕립학교의 멤버가 됨.
* 계관시인이란? 국가나 왕에 의해 공식적으로 임명된 시인 또는 그 칭호를 말함.
30살 즈음에는 스승 화이트 헤드와 3년간 공동 저술한 야심작 수화 원리 세 권을 지필 하였으며 이를 캠브리지 출판부에 제안하였으나 아무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반려당했다고 함.
화이트 헤드와 러셀은 눈물을 머금고 자비를 보태 출판했는데 두 사람의 명성에 비하면 대굴욕의 상황이었음.
하지만 훗날 이 책은 기호 논리학과 분석 철학에 공리 체계를 세우게 되었으며 수학을 논리학으로 귀속시키는 명저였음.
4. 시대의 리더
이후 수학이 조금 재미없어졌는지 러셀의 연구는 철학과 역사 정치 사회학 쪽으로 발전했으며 서양철학사, 행복의 정복, 정신의 분석, 결혼과 성, 게으름에 대한 찬양 등 40여 권의 책을 집필하며 잉크가 마르지 않는 삶을 삼.
1950년 러셀은 이를 인정받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세계는 문과와 이과 통합형 지식인 러셀을 지금까지 찬양하고 있음.
러셀은 일생 동안 1차 2차 대전은 물론 한국전쟁 베트남 전쟁 등 전쟁의 시대를 사는 등 역사의 한복판에 있었음.
1차 대전 당시 러셀은 미친 전쟁이라고 비난했고 징병을 반대하다가 6개월간 투옥됨.
심지어 독일 잠수함에 암호를 흘릴 수 있는 위험인물로 지목되어 해변가 접근 금지령을 받기도 함.
2차 대전 당시 러셀은 사회주의자였지만 반인륜적인 나치를 쓰레기라고 비판하며 연합군을 지지.
자유세력은 러셀을 정치 수단으로 활용했고 방송에서 재치 있는 입담으로 유명세를 타면서 그의 한 마디는 핵 정치인 이상의 힘을 갖게 됨.
하지만 러셀은 권력에 탑승하지 않는 진실한 영혼이었음.
자유 진영의 핵 정책에 반대하다가 1962년, 유명인 중 거의 최고령인 91세에 또다시 투옥.
이후 베트남 전쟁을 강력하게 반대하며 집필 활동을 하다가 1970년 99세의 나이로 운명.
러셀의 관심사는 부와 권력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 인류에 대한 연민이었음.
러셀은 vip 출신이었지만 약자를 위해 살았고 그 어떤 권위에도 굴하지 않았던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
노벨 문학상 수상식에서 한 그의 연설은 지금까지 회자됨.
5. 정리
"두려움은 미신의 근원이며, 잔인함의 중요한 원천이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 지혜의 출발점이다.'
- 버트런드 러셀 -
다음 포스팅에는 버트런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 책에 대해 한번 설명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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