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선택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면서 자신의 생각이나 신념을 강화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것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망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선택적으로 기억을 망각한다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심지어 인간은 없는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억은 왜곡되고 조작된 가짜 기억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 아래 저 깊은 곳에는 무의식이 있습니다.
무의식에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들어있습니다.
인간의 원초적 본능은 살고자 하는 본능 즉 자기 보존의 본능입니다.
원초적 본능에는 식욕 배설욕 수면욕 성욕이 있습니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먹고 배설하고 자야 하죠.
그런데 성욕은 왜 삶의 본능일까요. 성욕은 내 유전자를 다음 세대에 넘기고자 하는 본능입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유전자를 다음 세대로 넘김으로써 자신의 유전자를 살리려는 겁니다.
그래서 성욕도 또한 자기 보존의 본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이런 원초적 본능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아기는 배고프면 울고, 싸고 싶으면 쌉니다.
배가 고파서 울면 엄마가 젖을 물려주고 아무 때나 싸면 엄마가 치워주게 됩니다.
그런데 생후 12개월이 지나면서 아기에게 충격적인 두 개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하나는 이유식의 시작입니다. 배고파서 우는데 엄마가 젖을 물려주는 것이 아니라 입에 숟가락을 넣는 겁니다.
엄마의 따뜻한 가슴이 좋은데 이제는 차가운 숟가락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겁니다.
울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두 번째 충격적인 사건은 배변 훈련입니다.
여태까지 아기는 싸고 싶을 때 싸고 싸기 싫으면 안 쌌는데 이제는 싸고 싶은데 엄마가 못 사게 하고 싸고 싶지 않은데 싸라고 자꾸 변기에 앉히는 겁니다.
일어나려고 해도 자꾸 앉힙니다.
이 두 개의 사건으로 아기는 좌절을 합니다.
그러면서 문득 깨닫습니다. 현실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구나
그러면서 울고 떼쓰기만 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런 것을 알게 된 순간 아기에게 자아가 나타납니다.
자아는 이제 아기에게 조금 더 영리하게 굴 것을 명령합니다.
적절하게 현실과 타협하면서 이유식에도 적응하고 배변 훈련도 잘해나갑니다.
자신의 원초적 본능을 스스로 통제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면서 엄마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는 것으로 만족을 합니다.
하지만 아기의 저 깊은 곳의 내면에는 여전히 원초적 본능이 꿈틀거립니다.
자아는 원초적 본능이 터져 나오려고 할 때마다 이것을 꾹꾹 눌러서 무의식 속에서 삐져나오지 못하도록 합니다.
자아는 이제 모든 지저분한 것들을 무의식 속에 집어넣기 시작합니다.
성적 욕망과 폭력적 충동은 물론이고 자신에게 감당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기억도 또한 무의식 속에 집어넣습니다.
의식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과거의 아픈 기억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과거를 망각합니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의식으로 떠올리면 자신이 상처를 받기 때문에 무의식 속에 꼭꼭 밀어 넣는 겁니다.
이러한 망각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영화가 있습니다.
마틴 스콜세지가 감독하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셔터 아일랜드라는 미스터리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짧게 한번 이야기를 해보죠 이제부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정신병 범죄자들을 가두고 있는 감옥섬 셔터 아일랜드에서 수감자 한 명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서 연방 수사관 테디와 그의 파트너가 감옥 섬에 들어가는데요.
테디에게는 아픈 과거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아내가 방화범이 저지른 화제에 죽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 방화범이 이 섬에 수감되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겁니다.
그래서 테디가 이번 수사를 자원했던 거죠.
수사를 하던 중 테디는 이 섬에서 거대한 음모가 벌어지고 있다는 몇 가지 단서를 찾아냅니다.
이 섬은 정치범들을 정신병자로 몰아서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강제로 뇌 수술을 해서 사람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버리는 곳이었던 겁니다.
우여곡절 끝에 테디는 수술 현장인 낡은 등대 건물에 잠입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에는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병원장과 자신의 동료 수사관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테드에게 진실을 말해줍니다.
테리는 연방수사관이 아니고 사실은 정신병원에서 2년째 치료를 받고 있는 환자라는 겁니다.
그리고 테디가 동료 연방 수사관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바로 테디의 주치의였던 겁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테디의 과거를 일깨워 줍니다.
그 과거란 이런 겁니다. 테디의 아내는 정신 이상 증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테리는 그런 아내를 그냥 방치해 놓고 술독에 빠져 있었죠.
그런데 테리가 출장 간 사이 아내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신의 세 아이들을 집 앞에 호수에 빠뜨려 익사시켜버린 겁니다.
집에 돌아온 테디는 슬픔과 분노에 못 이겨 자신의 아내를 총으로 쏴 죽입니다.
이 사건으로 테디의 멘탈은 붕괴됩니다. 이때부터 태지는 허구의 세계로 빠져듭니다.
허구 세계에서 태디는 연방 수사관이고 자신의 아내는 자신이 죽인 것이 아니라 방화범이 죽인 것이며 자신에게는 원래부터 아이가 없었던 겁니다. 테리는 자신의 과거를 무의식 속에 억압함으로써 그것을 기억해내지 못했고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자신이 연방수사관이라는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낸 겁니다.
이처럼 자신의 기억을 억압하고 현실을 왜곡하는 것을 방어 기제라고 합니다.
방어기제란 자아가 상처받는 것을 방어하기 위하여 무의식적으로 동작하는 메커니즘을 말하는 겁니다.
프로이트의 딸인 안나 프로이트가 아버지의 무의식 이론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이론이죠.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을 확증 편향이라고 하는데요. 확증 편향이란 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려는 성향을 말합니다.
간단히 말해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겁니다.
이것을 다르게 표현하면 사람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은 보지 않는단 말이죠.
사실은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만 그것을 망각하는 것이겠죠.
즉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선택적으로 망각을 한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처럼 기억을 망각만 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없는 기억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 뉴질랜드 심리학자 린드세이의 실험
뉴질랜드의 린드세이라는 심리학자는 피실험자들을 모집하여 기억을 조작하는 실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먼저 피 실험자의 어린아이 시절의 사진을 가지고 그 아이가 열기구를 타고 있는 사진을 합성해서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진을 피실험자에게 지속적으로 보여주면 그 피 실험자는 자신이 어린 시절에 열기구를 탔었다는 기억을 가지게 됩니다.
잊지도 않은 기억을 만들어낸 겁니다. 심지어 어떤 피실험자는 실험의 내용을 다 듣고 나서도 자신이 열기구를 탄 적이 있었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겁니다. - 미국의 로프터스의 실험
그는 먼저 피 실험자의 부모로 하여금 피실험자가 어렸을 때 백화점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고 말을 하게 합니다. 물론 거짓말이죠.
그런데 그 말을 들은 피 실험자는 실제로 어린 시절에 백화점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다는 기억을 가지게 됩니다.
잊지도 않은 기억을 만들어낸 거죠. 심지어 자신이 길을 잃었던 당시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기도 합니다.
또 있습니다. 먼저 어릴 적 디즈니 랜드에 가본 적이 있는 피 실험자에게 만화 캐릭터인 벅스 버니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디즈니 랜드에 갔었을 때 벅스 버니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그랬더니 많은 피실험자들이 디즈니 랜드에서 벅스 버니를 본 적이 있다는 겁니다.
벅스 버니는 디즈니 랜드의 캐릭터가 아닌데도 말입니다.
기억을 해낸 것이 아니라 기억을 만들어낸 거죠.
이처럼 기억은 쉽게 망각되고 쉽게 만들어지는 겁니다.
우리는 과거를 쉽게 망각합니다. 과거가 괴로워서 자기를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부끄러운 자신을 감추기 위해서 과거를 망각하죠. 그러면서 자신이 믿고 싶은 기억을 만들어냅니다. 불편한 진실이 아니라 편안한 믿음을 선택하는 거죠. 물론 의도적으로 그러는 건 아닙니다.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 가지 사건을 겪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을 겪으면서 어떤 선택을 하고 또 그 선택에 따른 행위를 하죠. 과거에 겪은 사건 그때 내가 한 선택 그리고 그 선택에 따른 나의 행위의 총체가 바로 나입니다.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거죠.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러한 사건 선택 행위에 대한 기억이 바로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어떠어떠한 사람이다라고 생각할 때 우리는 자신이 겪은 사건과 자신의 선택과 행위에 대한 기억을 먼저 떠올리는 겁니다.
그래서 기억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자신의 정체성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말이 됩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억의 궁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억의 궁전에서는 사실이 망각되고 믿음이 사실로 둔갑하며 자신의 정체성이 왜곡되고 조작됩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바로 테디였던 겁니다.
테디는 자신이 연방 수사관이라는 확신의 덧에 걸려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테드는 그 확신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아니면 빠져나오지 않는 것이 좋은 것일까요?
제가 보기에 테디는 차라리 영원히 덫에 걸려 있는 쪽이 좋을 것 같습니다.
테디는 영원히 연방 수사관으로 남는 것이 좋은 것 같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우리들만의 확신이라는 덫에 걸려 있습니다.
그 확신의 덫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좋을지 아니면 덫에 그냥 걸려 있는 것이 좋을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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