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자 헤르만 헤세의 내면 탐구 3부작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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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구도자 헤르만 헤세의 내면 탐구 3부작 정리해 드립니다.

by 환희의찬가 2022. 9.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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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 내면 탐구 3부작

여러분은 헤르만 헤세라고 하면 무엇이 가장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대표작 데미안이 아닐까 합니다. 어른의 문턱에서 많은 청소년들에게 용기와 책임을 가르쳤던 이 책은 자타공인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이죠.
하지만 헤르만 헤세에게는 데미안 만큼이나 주옥 같은 책들이 많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헤세는 평생 동안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며 그 과정을 책으로 담아낸 작가입니다. 
사실 데미안은 그 내면 탐구 3부작 책 중 두번째 중간에 있는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데미안 이전에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통해서 이후에는 싯다르타를 통해서 혼란스러운 삶을 방황하다 마침내 진리를 깨닫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데미안이 우리에게 삶을 가르쳐준 책이라면 싯타르타는 우리에게 삶을 사랑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 대표작 세 편을 통해 헤세의 영혼 깊숙이를 들여다 보겠습니다. 

 

1부작: 수레바퀴 아래서

 

출처: 믿음사

헤르만 헤세는 1877년 독일 남부에서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선교사이다 보니 가문의 전통을 잇기 위해 헤세도 수도원 학교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예술가를 꿈꿨던 헤세에게 신학교의 빡빡한 규칙은 참으로 힘든 것이었습니다.

신학교 시절 헤세는 이러한 감옥같은 삶을 정말 힘들어 했고 학교에서 무단으로 도망가기도 하고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였습니다.  
마침내 시인 외에는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라는 선언과 함께 수도원에서 도망쳐 나오게 됩니다. 
아버지와의 관계가 어땠을지 짐작이 되시죠? 

헤세는 아버지의 기대에 큰 부담감을 느꼈고 급기야 우울증에 걸려 자살 시도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낸 헤르만 헤세 그의 청소년기와 너무 닮아 있어서 자서전이라고 불리는 소설이 있습니다. 
바로 수레바퀴 아래서입니다. 이 소설 속 주인공인 소년 한스는 헤세처럼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신학교에 입학합니다.
하지만 커다란 수레바퀴 같은 신학교의 전통과 권위에 억눌려 점점 행복을 잃어갔습니다.
물론 마음이 통하는 친구, 자유로운 영혼 하일러를 만나기도 합니다. 
한스와 하일러는 시와 문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누워 공상을 하는 등 영혼의 단짝이었죠. 
게다가 둘은 학교 지하실에서 첫 키스를 나누기도 하는데요. 
이는 엄격한 신학교 생활에서는 차마 꿈꾸지 못했던 자유롭고 생명력 넘치는 삶에 대한 한스의 갈망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한스의 숨통을 트여주었던 친구 하일러가 강제 퇴학을 당하게 되면서 거대한 수레바퀴 즉 외부 세계의 권위에 대한 한스의 반감은 점점 커져갑니다. 결국 한스는 신경쇠약에 걸려 학교에서 쫓겨나고 아무도 반기지 않는 고향으로 터덜터덜 돌아오죠

어떤가요? 헤세의 실제 삶과 매우 닮아 있죠?

물론 이 소설은 한스의 죽음이라는 비극으로 끝이 나지만 실제 헤세의 인생은 조금 달랐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웠던 방황을 겪어내며 쓴 작품들이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작가로서 성공가도를 달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쭉 평탄할 것만 같았던 그의 인생은 1차 세계대전을 만나며 또 다른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독일이 세계 대전을 일으키자 평화주의자였던 헤세는 이를 비판하면서 반전 사상을 담은 경고문을 언론에 발표하기 시작합니다.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어로 글을 쓰는 헤세가 반전 행보를 보이자 독일의 극우파는 그를 매국노라고 매도하는데요. 
급기야는 책의 출판까지도 제한당하게 됩니다. 
여기에 한 평생 갈등했던 아버지의 죽음과 아내와 아들의 투병 등 개인적인 삶에도 큰 위기가 찾아옵니다. 
결국 다시 한 번 신경쇠약이 재발한 헤세는 심리학자 칼 융의 제자였던 랑 박사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받게 됩니다. 

이를 통해 헤세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정신적인 위기를 벗어나는 경험을 하죠. 
이 시기에 썼던 소설이 바로 데미안입니다. 

 

2부작 데미안

출처: 믿음사

데미안의 주인공 싱클레어는 인생에 찾아오는 위기의 순간마다 데미안의 도움을 받아 위기를 벗어납니다. 
마치 헤세가 랑 박사의 도움을 받았던 것처럼요
그런데 데미안의 독자들 사이에서 항상 논란이 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이 데미안이 과연 실존 인물이냐 하는 건데요. 
싱클레어가 괴롭힘을 당할 때면 멋지게 나타나 구해주고 방황할 땐 아낌없이 조언을 해줬던 데미안, 그런데 소설의 마지막에서 데미아는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날 거야 너는 어쩌면 다시 한 번 나를 필요로 할 거야 하지만 이제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거나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해 그럴 때 넌 너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걸 잠시 후 싱클레어가 정신을 차려보니 데미안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습니다.


이 때문에 데미안이 실존 인물이 아니라 싱클레어가 스스로 만들어낸 내면의 인물이라는 의견이 팽팽하죠. 
데미안이 실존 인물이든 아니든 소설 내내 싱클레어의 인도자였던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손을 놓으면서 이제 싱클레어가 스스로의 인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생의 위기에서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결국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자신의 의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데미안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싱클레어는 어떻게 이 세상을 혼자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해세는 3년 뒤에 출간한 소설 싯타르타로 답합니다.

 

최종본 싯타르타

출처: 믿음사

데미안이 그냥 커피면 싯타르타는 TOP라 할 수 있죠.  
단순히 데미안보다 싯다르타가 더 뛰어나다는 뜻이 아니라 시타르타가 그만큼 헤세의 무르익은 깨달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인도에서 가장 높은 계급인 브라만의 아들 싯다르타인데요. 
싯다르타는 너무나 아름답고 총명해서 부모님에게는 자부심이고 친구들에게는 동경이며 동네 여인들에게는 욕망의 대상인 청년입니다.

근데 이 사람의 속은 항상 어딘가 공허했습니다. 
싯다르타는 절대적인 진리, 초월적인 삶을 갈망하는데 아무리 위대한 스승들에게 가르침을 받아도 그 갈등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절친 고빈다와 함께 수도승이 되겠다며 출가합니다. 
처음에는 산속에 들어가서 단식하고 금욕하는 삶 속에 진리가 있다고 확신했어요.


하지만 이내 참선을 통해 잠깐 나를 잊을 수는 있어도 결국은 현실의 나로 되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죠 마치 우리가 해외여행을 떠나서 잠깐 자유를 맛보고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내가 되고 싶은 나를 꾸며내보지만 결국은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회사를 다니고 월급 생활을 해야 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이런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싯다르타의 일생을 바꿔놓을 사람이 나타납니다.
바로 고타마라는 승려인데요. 싯다르타는 그 사람의 미소 걸음거리 손가락의 움직임만으로 그가 진짜로 깨달은 자임을 알아봤습니다. 하지만 깨달음은 스스로 얻어야만 하는 것이지 누군가의 가르침을 통해서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싯다르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타마에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깨달음을 얻겠다라고 선언한 뒤 친구 고빈다를 맡겨두고 홀로 길을 떠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대목에서 헤세는 스스로의 체험 없이 이 책을 계속 쓰는 것은 무의미하다라는 판단으로 1년 반 동안 펜을 내려놓습니다. 그리고 자기 체험을 끝낸 뒤 다시 펜을 들어 집필을 계속합니다. 


그럼 이제 스승 고타마를 떠난 싯다르타는 어디로 갔을까요? 
바로 속세입니다. 싯다르타는 속세에 돌아온 첫날 아름다운 기생 카밀라와 사랑에 빠져요. 
그리고 자신이 승려 일때는 인간들의 삶이 허상이고 진짜 세계는 그 너머에 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즉 참선을 하며 몰입했던 사유가 속세에서 경험한 감각보다 더 우월한 것이 아니라 이 사유와 감각을 동시에 사용할 때 우리가 세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죠. 
여기에 싯다르타의 숨은 키워드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경험입니다.

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던 건 그 누구의 가르침 때문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경험했기 때문인데요. 가르침은 자유, 감각해탈과 번뇌가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지만 우리들이 사는 세상은 그렇게 이분화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가르침을 통해 얻는 깨달음은 현실 세계에서는 적용할 수 없는 반쪽짜리인 것입니다. 
싯다르타의 삶을 직접 경험함으로써 세계를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보는 법을 깨닫습니다.

 
두 번째 키워드는 홀로 서기입니다. 

데미안에서는 데미안이라는 인도자가 주인공 싱클레어의 자아 찾기를 도왔습니다. 
싯다르타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주변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떠납니다. 처음엔 아버지를 떠나고 두 번째는 자기를 따라 출가까지 했던 절친 고빈다를 떠나고 그다음에는 사랑하는 여인 카밀라를 떠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가장 떠나보내기 어려웠던 존재, 아들까지도 떠나보냅니다. 
그러니까 싯다르타는 타인의 가르침이 아닌 자신의 경험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내 삶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이 오로지 나 하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얘기합니다.

이 소설의 끝에 싯다르타가 스승 고타마에게 두고 온 친구 고빈다를 다시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랫동안 수련했지만 여전히 가슴 속에 허기를 간직한 고빈다는 한눈에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었음을 알아봅니다. 
그리고 막 애걸복걸해요. 제발 알려줘 너에게 도움을 준 사상이 뭐야 누구한테 가르침을 받았니?

저는 이 대목에서 이 고빈다가 우리와 같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정말 성실하게 노력하며 살면서도 자신만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이유는 스스로에게 해야 할 질문을 자꾸 남에게 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싯다르타를 읽으면 무언가 성취하지 못해을지라도 심지어 방황하는 과정까지도 긍정하게 됩니다. 
싯다르타가 강조하는 경험의 자세는 무언가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이미 무한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느끼고 반응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진면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헤세가 지독한 우울증을 겪은 이후에 썼고 지필하던 중에도 실제 체험을 위해 멈추어야 했던 싯다르타는 이렇게 헤세 영혼의 지도에서 가장 후미지고 깊은 산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정리하며

외부세계의 권위와 싸웠던 초기작 수레바퀴 아래서 인도자의 도움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 회귀한 데미안, 마지막으로 진정한 깨달음을 위해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말하는 시타르타까지 헤세의 다사다난한 내면 여행을 정리해 보았습니다.ㅐ 
여러분은 이미 완전하고 위대하십니다. 따라서 스스로를 경험하고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고 말하는 헤세의 목소리와 함께 모든 분들이 더욱더 스스로를 사랑하는 하루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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