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이 인용한 글귀
얼마 전 유시민 작가는 명예 훼손 관련 피의자로 법정 최종 진술에 라인홀드 니부어의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의 글귀를 인용하였습니다. 유시민 작가가 라인홀드 니부어의 책을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예전 썰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추천한 적이 있고 알릴레오라는 유튜브 채널에서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강의나 토론에서도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왜 이 책을 이리도 자주 언급한 것일까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첫째, 이 책은 개인과 사회를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고 설명해 주고 있으며 인간의 본성, 인간의 어두운 면을 지나친 낙관이나 비관이 아닌 현실적이고 냉철한 눈으로 애기해 주고 있습니다.
두 번째는 현재 한국 사회에 처해 있는 여러 학연, 혈연, 종교, 지역, 직업 등 다양한 집단의 비도덕적, 비이성적 행태들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도덕적이라고 여기는 우리 자신이 그 집단에 속해 비도덕적 행위에 동참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를 설명할 어떤 근거가 필요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학교 때 이 책을 읽고 제대로 정리를 해보지 못했는데 아직 이 책을 읽지 못한 이들을 위해 이 책을 한번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20세기 초 미국의 기독교 낙관주의
20세기 초기 미국은 기독교 윤리가 지배하던 사회였습니다.
기독교 사상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수는 성경에서 한쪽 뺨을 맞으면 다른 쪽 뺨도 내줘라!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사랑하라!
당시 미국인들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 그리고 이타심과 박의 정신을 통해 현존하는 모든 갈등과 부정의를 끝장 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 이런 기독교적 낙관주의의 뒤통수를 쉬게 아주 쉬게 때리는 사건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에서 보였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고통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악마 같은 집단들이 사방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집단에 속해 있는 개인 vs 개인
문제는 그 집단들 속에 속해 있는 개인 한 명 한 명을 분리해서 보면 그들은 악마가 아니었습니다.
나치에서 유대인 500만 명을 학살했지만 정작 본인은 지극히 평범하고 좋은 이웃이었던 아이히만이 그 대표적인 예시였습니다. (한나 아렌트 참고)
개인적인 윤리를 확립하기만 하면 사회 부정의를 타파할 수 있다고 믿었던 도덕주의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큰 충격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한 학자가 바로 라인홀드 니부어였습니다.
사회 부정의에 대한 근본적 원인 탐구
아버지가 목사였던 니부어는 자신도 목사의 길을 걷게 되고 기독교적 낙관주의를 받아들이게 됩니다.
하지만 목사로 일하는 과정에서 그가 보게 된 것은 노동자 집단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자본가 집단, 흑인들을 괴롭히고 학대하는 인종차별주의자, 식민지를 쥐어짜고 학살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 니부어는 원래 가지고 있던 기독교적 낙관주의를 버리게 되고 끔찍한 사회 부정의의 근본적인 원인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파악하려는 연구를 진행하게 됩니다.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는 이 연구를 통해 나온 책입니다.
개인과 집단의 도덕적 본성 차이
니부어는 먼저 개인과 집단의 도덕적 본성이 다르다는 점을 분석했습니다.
니부어에 따르면 인간은 이기적일 수도 이타적일 수도 있는 존재입니다.
개인 대 개인 간의 관계에서는 각자의 이기심 때문에 다양한 부정의와 갈등이 생기게 됩니다.
하지만 각자가 이타심을 발휘하고 토론을 통해 합리적으로 협상하면 개인 간의 갈등은 충분히 해결 가능합니다.
친구 관계든 연인 관계든 싸울 때도 있지만 그러다가 서로 배려하면서 금방 화해하는 것처럼 말이죠.
다시 말해 개인 대 개인의 관계에서는 개인적인 도덕성, 즉 개인 윤리를 통한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개인들이 모여서 집단을 만들게 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모든 인간 집단은 개인과 비교할 때 충동을 올바르게 인도하고 때에 따라 억제할 수 있는 이성과 자기 극복 능력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수용하는 능력이 훨씬 결여되어 있습니다.
니부어는 개인과 달리 집단은 항상 이기적이고 또 비도덕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집단으로 모이면 모일수록 개인일 때는 가지고 있던 도덕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집단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명분이 생기고 책임감도 분산해서 가지게 되는 것이죠.
혼자 한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운 행동들이 함께하면 당당해집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사례는 정말 많죠?
집단 속에서는 인간 한 명 한 명의 이기적인 충동이 누적돼서 훨씬 더 강력하게 폭발하게 되는 거죠.
심지어 그 집단 내부에서는 이타적인 사람도 집단 간의 관계에서는 철저히 이기적인 사람이 됩니다.
팀 동료에게 헌신하는 축구 선수는 우리 팀 선수와 상대팀 선수가 시비가 붙으면 주저 없이 가서 상대팀 멱살을 잡고 동료를 위해 희생하는 군인은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해서 적군에게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길 것입니다.
니부어는 이를 애국심은 개인의 비이기성 즉 이타심을 국가 이기주의로 전환시킨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이타적인 개인이라도 집단 속에서는 결과적으로 이기적인 행동들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니부어는 개인 한 명 한 명이 도덕적이든 그렇지 않든 그들이 속한 집단은 필연적으로 집단 이기주의에 물들게 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이기적인 집단들은 당연하지만 돈, 자원, 정치, 권력 등 다양한 희소가치들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게 됩니다.
그럼 누가 이길까요? 강한 놈이 이길것입니다.
개인과 달리 집단 간의 관계에서는 설득 토론 협상 윤리가 잘 작동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힘과 힘의 관계 즉 정치뿐이라는 것입니다.
니부어는 이런 맥락에서 집단의 갈등에 있어 개인적 도덕성 함양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도덕주의자들을 비판하게 됩니다.
집단들 간의 관계는 도덕주의자들이 생각하듯이 도덕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 각 집단이 가지고 있는 힘의 비율에 따라 형성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정치 속에서도 두 집단 간 힘의 비율이 비슷비슷하게 되면 다시 말해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면 심각한 부정의는 발생하지 않게 됩니다. 서로 눈치 보느라 나쁜 짓을 하기가 힘들어지거든 근데 한쪽이 다른 한쪽에 비해서 지나치게 강하다면 자취 약한 쪽이 강한 쪽한테 탈탈 털리게 되는 것입니다.
니부어는 이 힘의 불균형이 인간의 본성적인 이기심과 더불어 사회 부정의를 만들어내는 핵심 원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사회 부정의 해결을 위한 라인홀드 니부어의 해결책
니부어의 말대로 개인에 비해서 집단이 비도덕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고 힘의 불균형이 문제인 것도 인정한다고 해보죠.
그러면 아마 이런 질문이 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뭐 어떻게 해라는 거야? 그냥 약한 집단은 조용히 입 닫고 살으라는 거야?"
니부어는 사회 부정의의 해결을 위해 비합리적 수단을 제시합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합리적이지 않은 원인 때문에 발생하는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비합리적 수단 즉 원한, 분노, 이기심, 정치적인 강제력 그리고 심지어 폭력마저도 어쩔 수 없이 필요할 때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자본가와 노동자의 힘의 균형이 안 맞아서 자본가가 노동자를 억압하고 착취해 노동자들이 이기심, 원한, 분노에 찬 저항을 해서라도 자본가들이랑 싸워서 힘의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래도 힘의 균형이 안 맞춰진다면 국가가 나서서 법과 제도를 통해 정치적 강제력 혹은 공권력에 의해 힘의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니부어 갸 말하는 것은 폭력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니부어는 강제력 사용의 필수 조건으로 비합리적 수단, 그중에서도 강제력은 잘못 활용되면 오히려 사회의 부정의를 또다시 만들어낼 수 있는 양날의 검처럼 아주 위험한 방법이라고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
강제력을 위한 조건
- 첫 번째 강제력은 가능한 최소한으로 활용할 것!
- 두 번째 인간 사회에 있는 합리적 도덕적 요소들과 가장 잘 부합하는 즉 상식적인 방법의 강제력을 쓸 것!
- 세 번째 강제력이 사용되는 목적과 목표의 차이 최종 목적인 사회 정의 실현과 그 최종 목적을 위해 꼭 필요한 중간 단계의 목표인 강제력 사용의 과정을 사람들에게 아주 잘 설명해 줄 것!
이러한 조건이 만족되는 강제력을 니부어는 선의지의 통제를 받는 강제력이라 말합니다.
선의지는 칸트가 말한 선한 것을 실천하려는 순수한 동기에서 나온 의지로 개인적 윤리의 최고봉이라 말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결국 사회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 윤리는 개인 윤리의 도움을 통해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니부어는 이 선의지의 통제를 받는 강제력을 통해 부정의가 최소화되는 정의로운 사회를 꿈꿨습니다.
라인홀드 니부어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정의로운 사회를 고민했던 현실주의자 였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펼쳐지고 있는 다양한 부정의! 부정의의 시대 라인홀드 니부어의 현실주의적 고민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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