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가 없는 사람은 항상 용기가 없는 것을 해명하기 위한 철학을 찾는다
책 제목이 왜 이방인일까?
오늘 리뷰해볼 작품은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입니다.
이 작품의 영문 제목은 The Stranger / The Outstander / Foreigner 등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주로 사용되는 제목은 The stranger입니다.
제가 왜 용어에 대한 먼저 설명을 했냐구요?
오늘 바로 이 책의 제목인 이방인이란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가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 stranger라는 단어가 이방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줄거리 1부: "오늘 엄마가 죽었다"
이방인은 모순되고 부조리한 삶의 모습을 아주 잘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이 작품에서 부조리한 현실을 바꾸거나 벗어나려거나 하기보다는 부조리에 반항하는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첫 번째 문장은 너무나도 유명합니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문학적 가치를 논할 때도 굉장히 높은 평가를 받는 문장입니다.
작품의 주인공 뫼르소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프랑스령 알제리에 살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입니다.
작품 초반에서부터 뫼르소는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행동하는 괴팍한 인물로서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양로원의 전보를 받은 주인공은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양로원으로 찾아갑니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시신을 눈으로 확인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시신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기까지 하는데요.
어머니의 죽음을 슬퍼하기는커녕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습니다.
게다가 장례식을 마치자마자 여자 친구랑 노닥거리고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껄껄대며 웃는 등 굉장히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주인공은 이렇듯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사건 속에서도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는 인물입니다.
이런 모습은 어머니와 문제가 있었다거나 불효자나 패륜화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렇게 해석했으면 이 작품이 부조리 문학의 대표가 될 수가 없었을 겁니다.
이러한 주인공의 모습은 작품의 주제 형상화를 위한 작가의 의도된 설정이라고 보면 좋겠습니다.
주인공인 뫼르소의 이러한 태도는 비단 어머니에게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여자친구인 마리에게도 이렇게 얘기를 합니다.
“너를 사랑하고 있는 것은 아니야 하지만 니가 원한다면 결혼을 해도 상관은 없어.”
어차피 사랑에는 의미도 없다. 이런 말이거든요.
주인공의 옆집에 살고 있는 레이몽이라는 불량배가 있었습니다.
그는 뫼르소에게 자신과 친구가 되자고 합니다.
뫼르소는 그가 불량배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친구가 되기로 합니다.
레이몽은 곧장 뫼르소에게 부탁을 하는데요.
지금 자신과 만나고 있는 내연녀를 두들겨 패줘야겠는데 그녀를 유인할 만한 편지를 대필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부탁을 받은 뫼르소는 거절을 할만도 한데 내가 이 사람을 돕지 않을 이유는 없다 라며 아주 태연하게 그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이러한 주인공의 상식 밖의 언행들은 얼마 후에 그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면서 극에 달하게 됩니다.
뫼르소는 친구인 레이몽의 초대를 받아서 여자 친구 마리와 해변가에 방문하게 되는데 그 곳에서 레이몽의 오빠가 있는 아랍인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레이몽에게 두들겨 맞은 애인의 오빠가 복수를 하겠다면서 찾아온 것입니다.
하필 그때 뫼르소가 이 레이몽의 총을 보관해 주고 있었습니다.
뫼르소는 그가 꺼내는 단도에 반사된 강렬한 빛이 눈을 찔러 자신도 모르게 우발적으로 그들 중에 한 명이었던 아랍인을 총으로 쏴서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그 일로 즉시 체포가 되고 재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까지가 이방인 일부의 내용이었습니다.
이 작품은 총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1부는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부분까지 뫼르소가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줄거리 2부
2부에서는 그가 재판을 받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계속 이어가 보겠습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뫼르소는 자신에 대한 변호조차 하지도 않고 너무나도 담담한 모습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해 버립니다. 사실 처음부터 이번 사건이 싱겁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당시의 알제는 프랑스 식민지였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이 알제리 사람을 죽였다는 거는 법정에서 감싸주고도 남을 만한 그런 사회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1심 기간은 무려 11개월간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이 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 합니다.
여자 친구인 마리가 법정에서 증언한 내용들이 거꾸로 뫼르소를 겨누는 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가 어머니의 죽음에 슬퍼하지도 않고 무덤덤하게 굴었으며 놀러 다니기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여자 친구인 마리는 증언 도중에 아차 싶은 생각이 들어서 눈물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황당하게도 이 법정에서는 아랍인 살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어머니 장례식에서의 뫼르소의 태도가 주목받고 있었던 겁니다.
게다가 뫼르소는 아랍인을 살해한 이유를 묻는 재판관에게 태양이 너무 눈부셨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해버리기까지 하는데요. 그 바람에 배심원들은 뫼르소라는 사람은 별것도 아닌 일로 사람을 죽이는 또라이 같은 사람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결국 재판이 쉽게 끝날 것이라는 예상은 빗나가 버립니다. 뫼르소가 사형을 선고 받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동요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참회를 권하러 찾아온 신부님을 꾸짖어서 돌려보내기까지 했어요. 뫼르소는 이제 감옥 안에서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생각합니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저 달과 별과 하늘이 인간에게 무관심한 것은 자신이 자신의 삶에 무관심했던 것과 같다는 것을요.
그리고는 행복감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작품은 뫼르소가 자신이 처형당하는 순간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그곳에 모여서 증오를 퍼부어주길 바라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여기까지가 오늘의 작품 이방인의 줄거리였습니다.
실제 작품의 분량은 길지 않은 편입니다.
관습과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괴짜, 뫼르소
그러면 이제부터 이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뫼르소는 자신이 처한 현실에 대해 무관심한 태도를 견지했고 자신의 삶에 대해서 반관적인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방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삶에 대한 이러한 무관심은 비단 뫼르소 자신에 한해서만 국한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근대 사회가 구축 해놓은 가치 체계를 수용하지 않음으로써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의 적이 되어버린 거 바로 그런 의미로 이방인이라는 제목을 붙였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뫼르소가 어머니의 죽음에 담담했다는 것에 분노했고,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서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모습에 경악 합니다. 결국 그는 어머니를 죽였다는 의혹을 받기까지 하며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진실을 말하는 그의 솔직함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는 그런 이방인이었습니다.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다르게 생각하는 이방인고 같은..
이제 제목의 의미가 좀 더 이해가 쉬우신가요?
주인공인 뫼르소는 살인죄로 사형 선고를 받는 자리에서 살인의 이유를 태양이 눈부셨기 때문이다 라고 얘기를 하는 굉장히 특이한 캐릭터입니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반드시 정신감정을 받아야 될 만한 환자라고도 볼 수 있겠죠? 하지만 작가는 부조리나 이런 현실 속에서 자신의 실존을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솔직한 오히려 순수하기까지 한 인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진지하게 세 가지의 죽음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아랍인의 죽음, 뫼르소에게 선고된 죽음
이를 통해서 실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 그것을 가장 큰 줄기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솔직한 모습의 뫼르소와 세 가지의 죽음을 통해서 삶의 이방인이었던 존재가 결국 부조리를 자작하도록 이끌고 있습니다.
출간과 동시에 굉장히 큰 임팩트를 전달했던 작품인 이방인, 이 작품은 초반부터 많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사실 주인공 뫼르소라는 인물에 대해서 쉽게 이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겠죠.
단어 그대로 그는 이방인이었으니까
독자는 물론이고 작품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작품의 내용이 정점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재판관도 변호사도 하물며 신부님까지도 이 뫼르소라는 인간을 진정으로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또 반대로 뫼르소 역시도 이러한 세상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였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까 사람들은 작가인 알베르트 카뮈의 사상에 대해서 오해를 하고 비난을 하고 왜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16년이 지났습니다.
결국 작가인 알베르 카뮈가 입장을 전하는데요.
1958년 영문판 이방인의 서문을 통해서 자신의 의도와 등장인물의 성격 등 자신의 작품 세계를 더욱더 구체적으로 밝힌 겁니다.
이 부분은 작가가 직접 말한 부분이니까 작품 이해에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될 거라고 생각을 해서 소개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뒤늦게 까뮈가 밝힌 뫼르소
작가는 뫼르소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뫼르소가 왜 이방인이 되었는지 이유는 간단하다 뫼르소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고 가식이 없는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거짓말 정도는 좀 쉽고 편하게 살기 위해서 매일같이 하는 일이고 설령 재판에서 실제로 죄를 뉘우치지 않을지라도 감형을 받기 위해 뉘우친 척하는 게 세상의 관례다.
그런데 그는 사실 뉘우치지 않았던 것을 뉘우쳤다고 말하는 것은 오히려 귀찮은 것이라고 대답한다. 이런 태도로 인해 그는 당연히 유죄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뫼르소는 진실에 대한 열정이 있고 진실이 있는 자아와 세계에 대한 그 어떤 정복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영웅처럼 요란하게 행세하지 않으면서도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을 마다하지 않는 한 인간을 이방인 속에서 찾았다면 크게 틀린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인 알베르 카뮈는 이렇게 비논리적인 인물인 뫼르소를 통해서 현실의 부조리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태양이 눈부셔서 사람을 죽였다는 뫼르소의 이 답변의 원인은 한 명의 개인의 파탄적인 인격뿐만 아니라 이 현 시대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에서도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이 작품이 발표됐던 1942년도 같은 경우에는 프랑스가 독일군 점령 하에 있었던 시절입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전 세계가 황폐하던 그 시절 이 작품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런 삶의 부조리를 뼈저리게 느끼고 있던 독자들은 주인공 뫼르소의 말과 행동에서 이 현실의 모순을 견뎌낼 수 있는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실존주의의 대중화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판단합니다.
여기까지가 깊은 풍자와 비틀림이 들어 있는 오늘의 작품인 이방인의 서평이었습니다.
워낙 분석이 다각도로 이루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보니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의미에다가 중점을 두고 작성을 해보았습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래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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