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은 유럽 전역에 있는 유태인 1200명 명 중에서 600만 명을 죽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대부분 아우슈비츠와 같은 포로수용소 가스실에서 죽었습니다.
유럽 전역에 있는 유태인들을 색출하고 찾아내서 분류하고 이송해서 가스실로 보내는 그 작업이 아마 만만치 않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수송의 총책임자가 누구였냐면 나치 친위대 소속의 루돌프 아이히만이란 사람입니다.
아이히만은 굉장히 성실하고 또 능력도 인정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독일이 전쟁에 패하자 전쟁의 부역자 아이히만은 몰래 아르헨티나로 도망을 갔습니다.
아르헨티나에서 약 15년을 숨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정보기관 모사드에서 아이히만을 찾아내었습니다.
모사드는 즉시 아이히만을 체포해서 본국으로 송환 합니다.
그리고 법정에 세웠습니다. 온 세계가 이 재판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당시에 한나 아렌트라고 하는 유대인 정치 철학자가 이 재판을 참관을 했습니다.
8개월 동안 참관을 하면서 그걸 기록에 남긴 것입니다.
그 기록이 바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란 책입니다.
1961년 12월에 첫 재판이 열렸는데요.
아이히만을 처음. 본 한나 아렌트는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면 아이히만은 600만 명을 죽인 살인마라고 보기엔 너무나 평범하게 모습이었던 것이지요.
아이히만을 보기 전에 사람들은 아이히만이 사이코패스거나 아니면 어떤 미친놈일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정상이고 머리 벗겨진 동네 아저씨처럼 생긴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아이히만은 굉장히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또 가족한테는 굉장히 자상한 아버지였습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유태인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린 것이 아니라는 이유였습니다.
자기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국가에서 시키는데 안 하면 안 하는 게 유죄지 열심히 일했는데 자기가 왜 유죄냐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느냐고 물어보니까 내가 내 일을 열심히 했는데 내가 왜 양심의 가책을 느끼냐고 말합니다.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서 정신 감정을 받았는데 지극히 정상이라는 소견이 나왔습니다.
그냥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었죠.
한나 아렌트는 이런 아이히만의 말과 행동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악한 자라는 게 따로 있는 게 아니고 누구나 어떤 상황으로 들어가면 저런 악행을 저지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악은 평범함 속에 도처에 있다라는 것이죠.
우리 주변에도 악은 널려있습니다. 우리 역사에도 고문의 달인 이근한 씨가 있었고 예전 뉴스 속에 팔레스타인 폭격에 손뼉 치며 환호하는 사람들, 포탄에 꽃을 꼽는 어린이 포로를 개처럼 다루는 군인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악행이라는 걸 인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자기가 지금 어떤 상황이 있는 건지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인지한 능력을 잃어버릴 수 있습ㅁ니다.
자 그럼 아이히만은 무죄일까요?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래서 아이히만이 무죄라고 말할 순 없습니다.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죄를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히만은 아주 근면한 인간이다.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유죄인 이유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우리는 생각의 무능의 죄를 짓고 살지는 않습니까? 악의 평범성에 빠져 있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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