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
하나는 역사는 역사가가 과거에 일어난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술한다고 하는 객관주의적 역사관이고
다른 하나는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것 자체게 불가하기에 역사가가 역사를 기술할 때는 자신의 주관적인 입장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라고 하는 상대주의적 역사관이라 할 수 있음.
절대주의적 역사관을 주장한 사람은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이고 상대주의적 역사관을 주장한 사람은 이탈리아의 사학자 크로체이고 상대주의적 역사관에 가까웠던 사람이 오늘 애기 할 EH 칸이라 할 수 있음.
칸은 상대주의적 역사관에 가까웠는데 그의 저서가 바로 태어나서 한번 즈음은 들어 본 그 유명한 역사란 무엇인가?임.
고전중에 고전이라 할 수 있음.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정리할 수 있음.
뭔가 좀 멋진 말 같기는 하지만 이게 무슨 말인지 생각해 보며 조금은 아리송해 지는데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음. .
<라쇼몽 이야기>
1950년에 만들어진 라쇼몽이라는 일본 영화가 있는데 들어 보셨나요?
배경은 10세기경 일본 헤이안 시대이고 등장 인물은 사무라이, 사무라이의 아내, 도적 그리고 나무꾼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나무를 하러 가던 나뭇꾼이 숲 속에서 사무라이의 시체를 발견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나무꾼은 관할에 바로 신고를 하고 범인은 우연히 잡히게 됩니다.
범인은 아주 악명 높은 타조마루라고 하는 도적이었습니다.
도적은 어차피 자기가 죽을 목숨이라고 하면서 범행을 순순히 자백합니다.
도적은 사건 상황을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숲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사무라이와 그의 아내가 앞을 지나가는데 그 아내가 너무 예뻤다는 겁니다.
그래서 도적은 사무라이를 얼른 쫓아가서 보물이 있다고 사무라이를 더 깊은 숲 속으로 유인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무라인을 포박했다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사무라이의 아내를 겁탈했습니다. 그리고 그냥 도망가려고 하는데 여자가 자기를 붙잡으면서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둘이 결투해서 둘 중에 하나가 죽어야 한다는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는 이긴 사람을 따라가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는 남자답게 사무라이를 풀어주고 정정당당하게 결투를 했다는 겁니다.
치열한 싸움 끝에 자기가 사무라이를 죽였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때 사무라이 아내가 또 나타났어요.
사무라이의 아내는 사건을 좀 다르게 얘기했습니다.
도적이 자기를 겁탈하고 바로 도망갔답니다.
자기는 너무 괴로워서 남편한테 차라리 자기를 죽여달라고 자기 단도를 남편한테 주려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때 그 남편의 표정이 너무나 무서웠대요. 경멸에 찬 그 눈빛에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냥 실신을 하고 말았대요. 잠시 후 정신을 들고 보니까 자기의 단도가 남편의 가슴에 꽂혀 있었다는 겁니다.
재판관은 진실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재판관이 무당을 불렀습니다.
무당이 죽은 사무라의 혼령을 불러요
그리고 무당은 죽은 사무라이로 빙의를 합니다.
그리고 사무리이의 혼령은 사건은 이렇게 진술합니다.
자신은 포박당한 채 아내가 겁탈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대요.
그런데 겁탈 당한 아내가 어차피 저질러진 일 자기는 도적을 따라가겠다고 하면서 도적 보고 자기를 죽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정말 기가 막히죠 그런데 도적은 자기를 죽이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풀어주고 떠나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는 아내에 대한 배신감과 모멸감에 너무 괴로웠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내가 가지고 있던 단도로 자결을 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사실 이 광경을 모두 지켜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뭇꾼입니다. 나무꾼이 죽은 사무라이를 발견해서 신고한 게 아니라 그 사건 전체를 사실은 몰래 숨어서 보고 있었던 거예요.
나무꾼은 사건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도적이 여자를 겁탈하고 도적이 여자가 마음에 들었던지 여자한테 자꾸 도망가자고 꼬셨다는 겁니다.
그런데 여자가 남편을 풀어주면서 남자들끼리 결정하라고 했다는 겁니다.
둘 중에 하나가 죽으면 자기는 이긴 쪽을 따라가겠다는 거예요.
무섭죠 그런데 사무라이하고 도적 두 사람 다 겁나서 싸울 생각을 안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여자가 열 받아서 "야! 니들이 남자냐?" 하면서 싸움을 부추겼다는 겁니다.
결국 두 사람은 할 수 없이 싸움을 벌렸습니다.
여기서 운 좋게 도적이 이겼고 사무라이가 죽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결투를 했냐고요? 서로 덜덜 떨고 여자 비명 소리에 놀라서 도망가고 도망가다 넘어지고 허공에 칼을 휘두르고 기어가고 구르고 흙뿌리고 다리 붙잡고 살려달라고 애원하고 완전 초등학생 싸움이었던 것입니다.
<결론: 그래서 진실은 밝혀진 것일까?>
사실은 나무꾼도 거짓말을 했습니다.
나무꾼은 그 여자가 갖고 있던 단도를 훔쳤거든요.
그 훔친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도적이 사무라이를 죽인 걸로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하나의 사건에 대한 네 사람의 진술을 보았습니다.
어떤 진술이 맞는 것 같습니까?
이 사건이 일어난 후 100년 후에 후대의 역사가 이 사건을 기록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역사가가 죽은 사무라이의 후손이라면 그 역사가는 사무라이와 도적이 개싸움을 하다 죽은 걸로 기술할까요?
그냥 명예롭게 자결했다고 기술할 가능성이 높을 것입니다.
또 다른 상황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만약에 관아에 불이 나서 그 당시 재판 기록이 거의 불 타져서 없어졌다고 합시다
근데 다행히 도적의 기록만 남은 거예요.
그럼 후대 역사관은 도적의 기록을 통해서 역사를 기술할 거 아니겠습니까?
도적이 사무라이와 명예롭게 결투하다가 사무라이를 죽인 걸로 기록하겠죠~
자 EH 카의 주장에 따르면 역사는 원래 이런 거라는 겁니다.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 그런 건 없다는 것이죠.
역사는 그것을 기술하는 역사가의 의견과 관점이 투영돼서 기술된다는 겁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다 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역사는 누가 어떤 사료를 어떤 관점과 의도를 가지고 기록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라는 것입니다.
훗날 역사가들은 오늘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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