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역설적인 제목의 책은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의 에세이를 모은 책입니다.
제목만 보면 도대체 이거 뭔 소리인가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보드리야르의 현대 사회의 미디어에 대한 통찰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제목과는 다르게 걸프 전쟁은 분명 실제로 발생한 역사이고 사건입니다.
그런데 도대체 왜 보드리야르는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할까요?
<원본과 복제품>
우리는 오랫동안 원본을 본질적인 것으로 복제품을 열등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이 바탕에는 원본은 참된것, 실제 하는 것이라는 것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여기서 원본은 현실로 복제품은 미디어라고 이해한다면 보드리야르의 미디어에 대한 태도를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당연히 미디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그 현실에 일방적인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현실이란 참된 것이고, 미디어는 거짓된 것이며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명제에 보드리야르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가상과 현실의 위계가 거꾸로 뒤집힌 것입니다.
오늘날의 우리는 '인공적인 것' 과 '자연적인 것'을 마구 혼용하여, 피상적인 것에 본질적인 힘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이 지속되다 보면 우리는 현실과 가상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하는 지경까지 오고, 가상이 현실이 되어버리는 괴상한 상황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미지로 환원된 세상>
마치 우리가 지닌 인종별 스테리오타입이 할리우드 미디어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가상이 현실로부터 말미암는 것이 아닌, '이미지'라는 형태의 가상이 현실로 환원되는 괴상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무슨 헛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겠지만, 온갖 매체와 정보의 세상에서 진실이라는 것은 매우 상대적인 것이 되었다는 말은 그다지 어색하지 않습니다 .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 바로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라는 아포리즘입니다. (아프로짐이란 깊은 체험적 진리를 간결하고 압축된 형식으로 나타낸 짧은 글을 말함)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걸프 전쟁은 분명 일어났지만 그것은 진짜 걸프 전쟁이 아닌 CNN과 서방 미디어를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중계된 하나의 미디어 엔터테인먼트지 전쟁의 실상 달라도 한참 다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는 해당 사건에 대한 특정 이미지만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미지(하이퍼리일러티)는 전쟁의 참혹함, 인간의 죄책감과 양심, 석유 패권에 대한 탐욕을 지워 버리고 미군을 '세계 경찰'로 옹립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보드리야르는 "걸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보드리야르의 주장을 두고 기술 발전에 대한 허무주의, 극단적 냉소 등으로 비판하지만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생각해 보십시오. 이 책이 처음 나왔던 그 때보다 훨씬 더 가상과 현실 사이가 불분명해졌습니다. 이미지로 둘러싸여 본질을 놓치는 현실을 생각해 보십시요.
보드리야르는 우리에게 이러한 시뮬레이션의 연속에 갇힌 삶에 대해 우리가 어떠한 용기를 갖고 헤쳐 나가야 할지 그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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