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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대일선전상명서
우리는 삼천만 한국 인민과 정부를 대표하여 삼가 중국, 영국, 미국, 소련, 캐나다, 호주 및 기타 모든 나라의 대일 선전이 일본을 물리치고 동아시아를 재건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 됨을 축하하여 이에 특히 다음과 같이 성명한다.
1. 한국 전체 인민은 현재 이미 반침략 전선에 참가하였고, 일개 전투 단위가 되어 축심국(軸心國, 제2차 세계대전 때에 일본․독일․이탈리아 3국 동맹의 편에 속했던 나라)에 대하여 선전 포고한다.
2. 1910년 합병 조약 및 일체 불평등 조약이 무효임을 거듭 선배포한다. 아울러 반침략 국가들이 한국 내에 가지고 있는 합리적 기득권익을 존중한다.
3. 왜구(倭寇)를 한국⋅중국 및 서태평양에서 완전히 축출하기 위하여 혈전으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한다.
4. 맹세코 일본이 비호하여 조성된 창춘(長春) 및 난징 정권(南京政權)을 승인하지 않는다.
* 창춘 정권 : 일본이 만든 괴뢰 국가 만주국을 의미
* 난징 정권 : 1940~1945 기간 중 난징에 있었던 친일 괴뢰 정부
5. 나구선언(羅邱宣言) 각 조를 단호히 주장하며 한국 독립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용하며 이것으로 인해 특히 민주 전선의 최후 승리를 미리 축하한다.
* 나구선언 : 1941년 8월 14일 연합국의 참전 목표와 전후 세계 질서에 대한 미국과 영국의 공동 입장을 정리한 ‘대서양 헌장’을 의미, ‘주민의 자유의사에 반하는 영토 변경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항이 들어 있음.
대한민국 임시 정부 주석 김구(인), 외무부장 조소앙(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초기 민주주의 헌법을 제정하던 기세에도 불구하고 얼마 안되어 이승만의 먹튀와 함께 공산당 자금을 둘러싼 비리까지 벌어지며 좌파 우파로 분열 되고 지지 부진하던 시절이 있었음.
1920년대 임시정부의 암흑기를 거쳐 잊혀져 가던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재부흥 시킨 인물이 그 유명한 김구선생임
교과서에서 배우는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공원 의거로 인하여. 당시 중국 장개석이 임시정부를 크게 주목하였고. 4억 중국 인민들이 못 하는 일을 조선인들이 해냈다면서 임시정부의 가장 큰 후원자로 나서게 되었음.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중화민국과 동맹으로 활동하며 임시정부 조직을 재정비하고 광복군을 창설하기에 이름
1941년 미국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하자 중국도 재차 선전포고를 하였고 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것
대한민국 임시정부 광복군은 지청천을 사령관으로
당시 좌파 계열이던 김원봉의 조선의용군을 흡수해 크기를 키웠으며 선전포고 이후 화북 지방에서는 조선의용군을 주축으로 한 일본과의 전쟁. 영국군의 요청으로 광복군은 미얀마 전선에서도 참전하였고
미국 CIA의 전신인 OSS와 합작하여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했음. 가장 큰 성과는 카이로 회담이었음
김구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장제스의 중화민국과 동맹이 됨에 따라 카이로 회담에 참석한 장제스가 적극 한국의 상황을 서방에 어필했고 당시 일본이 침탈한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등 다른 식민지와 달리 한반도는 일본의 침략에 노예 상태가 되었음을 분명히 어필하여 일본 패망 이후 가장 먼저 독립 국가 성립을 하는 국가로 선정 됨
다만 이러한 선전포고에도 불구 하고 폴란드 임시정부가 각종 유럽전선에서 참전했음에도 승인 승전국 지위를 못 누린 것 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 역시 당시 강대국의 논리로 승전국 지위를 인정 받지 못 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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