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리뷰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 책리뷰

환희의찬가 2022. 11. 7.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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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비 (아버지의 해방일지)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딸이며 아들이다. 자라나며 각자의 세계를 확장해 나가고 세상을 배워 나가지만 유년 시절의 나를 돌이켜 보면 역시 태초의 세계는 부모님, 그리고 부모님이 열어준 만큼의 그 무엇이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딸 아리에게 언젠가는 세계의 전부였을 아버지(하지만 '빨갱이'로 불린 세월이 대부분이었던)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평생을 사회주의자의 정체성으로 누군가를 돕고, 누군가를 힘들게 하며 자신의 삶을 살아냈던 아버지. 외동딸이었던 아리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딸이지만 몰랐던 아버지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며 자신과 아버지의 유대, 연결고리를 다시 떠올려 보게 된다.

이 책의 아버지는 여느 아버지와 무척이나 다르다. 일단, 빨치산 출신이다. 심지어 어머니도 빨치산 출신으로두 사람의 대화에는 혁명과 이념에 대한 내용이 일상으로 오간다. 주인공은 그런 빨치산의 딸로 오랜 세월을 살았다. 아버지의 귀한 딸로 지낸 시간도 있고, 감옥에 있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지낸 시간도 있다. 빨치산의 딸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자 한 적도 있지만 떠나지 못했던 시절이 있다. 그러다가 주인공 아리는 서울로 자연스럽게 멀어져 자신의 삶을 살았다. 그 세월 속에서 아리는 아버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 했다. 아버지의 삶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그랬던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에 나는 아버지의 세상을 알게 된다. 비로소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아버지의 주변 사람들을 통하여 몸소 경험하고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어떤 사람과 아주 깊이있는 유대를 형성하지 않는 한, 그저 지나치는 사람에게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건 그 사람의 단면 뿐일 것이다. 사실 가족이라고 해도 가족의 모든 면을 안다고 자부할 수는 없을 터. 그만큼 사람은 입체적인 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리의 아빠 고상욱씨 역시 그러하다. '오죽했음 그랬겠나?'라며 주변 사람들의 연락에 성심성의껏 돕고 돈을 떼이기도 하며, 그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아내와 딸이 져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렇게 딸의 입장에서 보면 당하고 살면서도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 을 이야기 하는 아버지를 보는 딸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런 아버지를 반면교사삼아, 도리어 어지간하면 사람과는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을 택해버렸다. 

현대사의 비극이라고 거칠게 줄여서 말해도 되는 걸까 싶을 정도로, '빨갱이'라는 이름 하에 징역을 살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다치게도 하며 살아온 고상욱씨. 색깔을 구분짓고 편을 갈라 고문하는 행위들... 대체 그건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살아온 궤적을 훑어보면 그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온 평범한 시민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정을 바라보며 고통스러운 삶에서 해방되신 아버지를 담담하게 보내려던 아리 역시, 장례식장에서야 비로소 빨치산으로서의 아버지가 아니라 그저 '나의 아버지'로서, 한 남자로서 살아온 아버지를 이해하려, 돌아보려 한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 했다. (중략)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구례에 가면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찐으로 써가며 그들의 삶을 보여준다. 나도 작가와 함께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을, 아버지가 살아낸 아버지의 혁명을, 아버지가 삶으로 실천한 그의 이념을 알아간다. 나이도 생각도 인연도 다양한 사람들이 한데 모인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그 자체로 작은 세계였다. 책의 주인공이 아버지의 해방을 이해하며 본인도 과거에서 아버지에게서 해방되어가는 게 느껴졌다. 책의 주인공 뿐만 아니라 아버지 주의 사람들도 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조금은 달라진 삶을 살게 될 것 같다.

아버지가 빨치산 출신이라는 것부터가 매우 신선했는데,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니 더 놀랍다. 작가가 32년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라는데, 그 시간동안 작가가 깨달은 것을 이 소설을 통하여 어렴풋이 느낀다. 그리고 나의 아버지를 가만히 떠올리게 된다. 나도 나의 아버지와 한결 가까워질 수 있을까? 단면이 아닌 입체적으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해방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해방일지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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